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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Hwang/interview

[인터뷰] <검은집> 황정민 “제가 어떤 배우냐고요? 저는 그냥 배우에요”


마음에 품고 있는 여자에게 말 한 번 제대로 붙여보지 못한 채 바람둥이 친구에게 여자를 빼앗기고 분노하던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강수, 속물의 전형을 보여준 <바람난 가족>의 바람난 속물 변호사 영작, 비열하고 비굴하기 짝이 없던 <달콤한 인생>의 백사장, 사랑에 목숨 건 <너는 내 운명>의 순박한 농촌청년 석중, 강간범을 특히 싫어하는, 말투는 거칠지만 사랑에는 서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형사 두철, 그리고 <사생결단>의 도살견 같은 도 경장.


매 작품, 역할마다 무서운 몰입으로 완벽한 인물 표현을 해온 황정민이 이번에는 동명 일본소설을 영화화한 <검은집>에서 마음이 없는 인간이라는 ‘싸이코패스’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보험사정인 ‘전준오’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황정민은 ‘역시 황정민’이라는 찬사가 터져나올 만큼 갓 입사해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이던 준오가 싸이코패스와 정면대결하기까지 겪는 과정을, 그 심경의 변화와 감정의 결을 잘 살려냈다.


황정민을 인터뷰하고 내린 결론은, 역시 배우 황정민은 대한민국이 신뢰하는 대표적인 배우라는 것이다. 황정민이 나오면 그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다. <검은집>만 봐도 그렇다. 생소한 소재가 주는 호기심, 그 이상의 관심을 끌어낸 건 배우 황정민의 힘이다. 이번에 <검은집>으로 4연속 흥행 안타를 칠까 아닐까,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황정민 앞에서 그건 큰 의미가 없다. 그는 연기가 좋아서 연기를 할 뿐인 천상 배우, ‘그냥 배우’니까.


<검은집>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소감이 어떠신지?


이제는 뭐 열심히 했으니까 관객 분들 기다리는 게 최우선인데, 기다리는 순간이 배우로서는 최고의 공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뭐…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들어요.


<검은집>은 ‘사이코패스’라는 생소한 소재를 다뤄서 관객들의 기대가 높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객들은 ‘황정민이 선택한 최초의 공포스릴러’라고 해서, 황정민이라는 네임밸류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을 텐데 그에 대한 부담감이 있지 않나요?


부담감…. 모르겠어요. 작품에 대한 부담감은 늘 있었고, 작품 할 때마다 느끼는 거니까. 그건 아마 직업이 평생 배우인 이상(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늘 가져야 하는 숙제인 것 같고.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했다, 뭐 이런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 것 같아요. 매 작품 처음 하는 거죠, 뭐.


안 그래도 주목을 받는 작품인데 관객들은 황정민 주연이다, 황정민 주연의 신선한 소재를 다룬 그런 공포스릴러다, 그래서 더 기대를 할 것 같거든요.


그렇죠. 그런 기대는 사실…인 것 같은데. 저는 기분이 좋아요. 왜냐면 어쨌든 그런 식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첫 시작부터 기분이 좋은 거잖아요. 근데 더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부담감…? 그게 부담감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왜냐면 지금 시점에서는 제가 해야 할 일이 전혀 없어요. 배우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끝났어요. 더 담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아닌지라 그냥 그런가 보다, 그러는 것 같아요.


낙천적인 것 같아요.


음… 낙천적인 것 플러스 구분을 좀 지으려고 하는 게 있어요. 그니까 배우의 몫이 있는 거고, 그걸 바라보는 관객들의 몫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건 철저하게 구분 지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원작소설을 몇 년 전에 우연히 사서 읽으셨다던데, 영화와 비교했을 때 영화가 특히 잘 표현한 부분이 있다면?


글로 쓰여져 있는 느낌하고 형상화 되었을 때, 물론 글로 읽을 때는 독자마다 상상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영화화했을 때는 그 공통분모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거라 대단히 힘들고 부담감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그게 맹점이라면 맹점인 건데 어쨌든 이게 일본소설인 거고 한국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한국사람의 냄새를 풍길 수 있는 느낌이 분명히 있는 거니까, 그런 부분이 소설이랑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고, 또 하나는 글로 오는 색깔이나 색감이나 그런 느낌들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다는 거. 그 다음에 배우들의 연기나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다는 거. 어떻게 연기를 할까? 뭐 그런 거.


원작이 따로 있는 영화는 대부분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잖아요. 그리고 ‘원작이 더 낫다’고들 많이 해요. 그 굴레를 잘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번에 황정민 씨 같은 경우 의도해서가 아니라 그냥 몇 년 전에 봤던 소설인데 내용이 좋았고, 그래서 이번에 이 작품을 하겠다고 결정하신 거고, 또 영화 하면서 원작을 다시 읽어보셨을 것 같고, 그리고 영화가 나와서 영화도 몇 번 보셨을 것 같고, 그래서 질문 드린 거에요. 정확하게 짚어내실 것 같아서.


그게… 이런 말씀 드리긴 좀 그렇지만. 제가 그런 생각을 하니까 연기하는 데 있어서 자꾸 갇혀요. 그게 자꾸 벽을 만들어요, 오히려. 그래서 이런 생각을 자꾸 하면 안되겠구나 싶어서… ‘내가 차라리 이 책을 안 보고 했으면 좀더 편했을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자꾸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좀 벗어나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상당히 다른 일이고, 별개의 문제일 수 있거든요. 근데 그 모든 개인이 읽었던 느낌이나 감정을 한 편의 영화로 다 충족시킬 수는 없다고 봐요. 그 나름대로의 느낌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저도 그러지 말자, 그러지 말자, 라고 스스로 많이 자제했던 것 같아요.


사실 남의 인생을 대변해서 보여준다는 건 늘 마찬가지겠지만, 이번 캐릭터는 특히 더 표현하기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촬영하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생도 많았을 것 같고.


육체적으로 힘든 거야 뭐, 누구나 다 그런 거니까. 저만 그러겠어요? 다들 몇 시간 못 자고 고생하는데. 근데 단지 제가 조금 힘들다고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두려움, 공포에 대한 감정을 끄집어낼 때. 보통사람, 저도 보통사람인데, 그런 부분에 대해 다 피하잖아요. 그런 공포를 안 느끼려고 하고. 사람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요. 충분히 와 닿아야 하는데, 예를 들어 사랑의 감정은 늘 주변에서 얘기 듣고, 느끼고, 또 마음 한구석에 다 뭔가 하나 있잖아요. 근데 이건 공포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거니까, 이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도 질문 드리고 싶었던 게, 일반적으로 힘든 부분은 배제를 하고 그런 종류의 공포를 느낀다는 게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고는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실제로 사이코패스를 주변에서 보신 적은 없을 것 같고. 그래서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표현하셨는지를 묻고 싶었어요.


가장 주안점을 둔 건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준오의 느낌처럼, 준오가 당하고 불안해하고 그런 것들을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저도 공포영화나 스릴러물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고 주인공이 죽으면 안 되는데, 어떻게 저걸 헤쳐 나가지? 이러면서 같이 간단 말이죠. 저도 관객일 때 그런 느낌을 받았으니까 분명히 제가 하는 입장에서도 그런 느낌을 줘야 한다, 관객의 느낌도 같이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게 촬영 중일 때는 같이 가고 있는 건지를 모르잖아요? ‘정말 내가 관객들과 같이 가고 있나? 아니면 나 혼자 앞서가나? 그것도 아니면 관객들은 저만치 가고 있는데 내가 느리게 가고 있나?’ 이런 것들. 그것이 많이 힘들었어요.


소설은 글로 표현되어 있으니까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면 우리가 알 수 있잖아요. 이미지가 있으니까. 그런데 그걸 표현해야 하는 거니까, 그게 힘든 것 같아요. 차라리 자막으로 ‘소스라치게 놀라는 준오’라고 써주면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그런 것들. 그래서 아마 더 어려운 게 아니었나… 예.


사이코패스에 대해 따로 공부하셨다던데?


네, 제가 뭘 알아야 하니까 자료들을 많이 찾아봤죠. 논문이나 책, 정신분석학에 나와있는 사이코패스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또 왜 갑자기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요즘에 느닷없이 출현할까? 하는. 이 소설도 그냥 갑자기 쓰여진 건 아닐 거란 말이죠. 분명히 사회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거고 그래서 이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반향을 일으킨 것 텐데 그 동기가 무엇일까? 왜 굳이 이 소설을 영화화해서 우리나라에 보여줄까? 그런 것들을 좀 알고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해서.


영화 속에서 전준오는 사이코패스도 결국은 인간이라고 결론을 내리는데, 사이코패스에 대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황정민 씨는 사이코패스를 어떻게 정의하시는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쨌든 그들도 인간인 거잖아요. 물론 저한테 직접적인 행동을 가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준오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고통을 당하는데 왜 손을 잡아줘?’ 저는 ‘아 이게 잡아줄 수 있어?’ 하고 반문하고 스탭들한테도 “잡아주겠니? 잡아줄 것 같아?” 하고 물었어요. 다 안 잡아줄 것 같대요. 저도 안 잡아줄 것 같거든요? 하지만 전준오는 잡아줘요. 그렇게 한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그게 뭐 전준오라는 사람이 대변인은 아니지만 그를 통해서 누구나 잡아줄 수 있는 마음은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에요. 그게 사람이잖아요. 그러기 힘들지만….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그래서 사람인 거고, 그러지 못해서도 사람인 거에요.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사람이다, 라는 걸 보여주고 싶기 때문에 분명히 잡아줄 수 있는 거고, 동기가 생기는 거에요.


인간으로서 잡느냐 아니냐, 이분법화 되어 있지만 그게 영화적으로 재미 있나 없나를 떠나서 저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 관계라는 게 사회에서 그나마 힘들 때 옆에 앉아줄 수 있고 다독여줄 수 있고 얘기 들어줄 수 있고, 이런 것 때문에 그나마 살만한 건데, 그게 없으면 우리가 살 이유가 없는 거 아니에요. 뭐 보이기에 생각은 평범하고 재미 없다고 할지언정 그게 핵심 있는 것 같고 제일 중요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전준오라는 인물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도 일반인으로서는 전준오의 마지막 행동은 공감을 얻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예전에 어떤 사람이 고문을 당한 적이 있는데,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가해자를 보면서 연민이 느껴지더래요. ‘저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한 거죠. 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서 충분히 공감이 돼요. 얕게 생각하면 순간 뭐 저런 게, 이렇게 생각하게 되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거든요. 그게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극중에서 “사이코패스와 사이코는 다르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영화가 그 차이점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시죠?


저는 내심 걱정되는 게, 사이코패스라는 질환을 앓는 모든 사람이 살인자는 아니거든요? 누구나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생각들이고, 누구나 앓을 수 있는 병이거든요. 다만 영화라서 그렇게 극단적으로 보여준 거죠. 저도 가질 수 있는 거에요. 누구나 기질을 가지고는 있거든요. 상대방을 힘들게 하면서, 그걸 알면서도 굉장히 냉정해질 때 있잖아요? 하지만 그러고 나서는 후회스럽고 ‘내가 왜 그랬지? 그러지 말걸’, 하는 식으로 늘 후회하고 반성하게 되잖아요. 그런 건데, 저는 영화에서 사이코패스를 너무 극단적으로만 표현이 된 것 같아서 걱정은 있지만, 영화에서 사이코패스를 나름, 대단히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심리적 공포가 포인트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시각적인 면 때문에 심리적 공포가 약간 희석될 수도 있는데?


맞아요. 저도 하면서도 너무 가지 않느냐, 너무 그런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심리적인 느낌도 충분히 줘야 하지만 시각적으로도 보여줘야 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좀 우리가 열고 가자, 이렇게 얘기하고 결론을 내렸죠.


감독님과의 작업이 어땠는지?


재미있었어요. 감독님, 저, 촬영감독, 조명감독, PD 다 모여서 같이 얘기하고. 한 배를 탄 사람들이니까 힘든 거 있으면 서로 나누려 했고, 늘 얘기를 했어요. 질릴 정도로.


유명한 밥상 멘트 이후 달라진 게 있는지? 또 그게 많이 패러디 되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달라질 게 뭐 있나요. 늘 똑같아요. 제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 그래야 상대방도 마음을 여는 거니까요. 패러디 되는 거야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이죠. 그 말을 다른 분들이 할 수 있는 건 제 뜻을 이해하고 공감했으니까 하시는 거잖아요. 그러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요.


늘 느끼는 거지만, 모든 질문에 답변을 정성스럽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럼요. 어쨌든 저희 영화 때문에 저 만나겠다고 오신 건데 대단히 정성스럽게 해야 하는 거죠. 그건 당연한 거죠. 우리가 이렇게 선물을 만들어 놨으니 잘 풀어보십시오, 하고 관객들한테 드리는 거니까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한 거죠. 그렇게 받아들이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황정민, 하면 워낙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말씀 많이 들으시니 별 감흥이 없을 듯하고…

아니에요, 감흥 있어요. 왜… 아니, 배우가 연기 잘 한다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기분 좋은데요. 최고의 찬사지.

아니 그래도 연기 잘 한다, 멋있다 이런 말은 많이 들으실 테니까.

멋있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요? 얼굴이 좀 작아졌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크크크. 하하하하.

아니 그럴 리가요. 멋지신데. 근데 연기도 연기지만, 이번에 20kg이나 감량을 했다던데?

예, 20kg 정도 빠졌는데, 지금 이게 원래 제 체형이에요. <너는 내 운명> 때 많이 찌워놔서 서서히 빼다가 이번에 좀 많이 뺐죠.

캐릭터에 맞춰서 빼신 거죠?

그렇죠. 전준오를 보여줘야 하니까. 황정민을 보여드리는 게 아니잖아요. 황정민을 통해서 그 인물을 보는 거지, 황정민은 볼 게 뭐가 있겠어요. 황정민… 별거 없는데요. 황정민이 연기하는 그 인물을 통해서 뭔가 같이 소통할 수 있는 점을 찾는 거죠. 그래서 저는 늘 노력하는 게, 그 인물에 비해서 황정민이 좀 안 보였으면 하는 건데, 그게 되나요? 사람이 하는 일이라…(웃음) 모르겠어요. 그게 늘 화두에요.

강신일, 유선 씨와 호흡을 맞췄는데, 어땠어요?

예전부터 알고 있는 분들이고, 신일이 형도 옛날 대학로에 있을 때부터 굉장히 존경했던 배우였고. 좀 신나서 일했죠. 판이 벌어지기 전부터, 좋은 배우들과 한다는 것 때문에. 왜 그런 기대를 하냐 하면, 배우들은 서로 액션-리액션 속에서 나오는 분위기에 대한 기대감이 있거든요? 이번에 현장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충분히 느꼈고, 하모니를 이루는 게 참 중요한데 잘 된 것 같아요. 또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현장의 분위기를 다 느끼더라고요. 그래서 허투루 할 수 없고. 현장에서 진짜 허투루 할 수 없어요. 다들 아니까요.

배우간의 호흡도 중요하지만 현장 분위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텐데? 극의 내용상 좀 무겁지 않았나요?

좀 전투적이었던 것 같아요. 현장 분위기만 놓고 따지자면 <너는 내 운명> 때는 아주 해피했죠. 까르르르, 까르르르. 물론 전도연 씨, 홍일점이 있어서 더 그런 것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좀 딥 하고 그랬죠. 그래서 스탭들한테도 “나 원래 이렇게 어두운 사람 아니거든? 나 대단히 밝은 사람이거든?” 막 이러고 다니고 그랬는데. 역할 따라가는 것 같아요. 전체 분위기도 그렇고.

영화가 끝나고 캐릭터 전환할 때 어떻게 하는지?

작품 할 때는 늘 그 생각만 하고 오롯이, 딱 그것만 생각해요. 그래서 작품이 끝나면 아무 생각이 없어져요. 그냥 하얘져요. 마지막 촬영 끝나면 ‘작품 끝난 거지? 진짜 끝났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머릿속이 하얘져요.

끝나고 나서 찍은 영화를 여러 번 볼 텐데,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그냥…. 지금은 솔직히 제 얼굴만 보게 되요.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데도, 내가 어떻게 연기를 하고 있었나 싶어서 얼굴만 보게 되요. 저도 일반 관객들 틈에 섞여서 볼 때는 좀 한 발짝 물러서서 전체를 보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그게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냥 내 얼굴만 보게 돼…. (웃음)

원래 영화 한 편 찍고 나면 여러 번 반복해서 보세요?

네. 많이 봐요. 많이 보는 이유는, 농담 삼아 티켓 많이 팔려고 그러냐, 이런 얘기도 하는데 그거 제가 많이 봐야 얼마나 많이 보겠어요. 그래 봤자 열 번, 스무 번 이낸데. 자꾸 저 스스로를 검증하는 것 같은데, ‘처음에 내가 이 작품을 왜 했지?’를 화두로 삼아서 계속 보다 보면 아, 내가 이래서 이 작품을 했구나 하는 걸 찾게 되고. 또 제가 했기 때문에 실수나 모자란 부분을 찾는 거죠. 아쉬운 건 전 전혀 없어요. 그 당시로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모자란 점은 분명히 있거든요. 그렇다면 다음에 어떤 걸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상황의 감정표현을 해야 한다면 저런 식으로 감정 표현을 하지 말고 다르게 해봐야겠다, 뭐 이런 정도.

모자란 점은 있지만 아쉬운 건 없다, 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게 참 좋아요.

왜냐면 제가 그릇이 그거밖에 안 되는 거에요. 어쩔 수 없는 거에요, 그거는.

그게 아니라 난 그 당시 최선을 다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하죠.

예…. 전 좀 그런 편인 것 같아요. 아쉬울 것 같으면 아예 하지 않던가, ‘아쉽다’는 단어를 전 대단히 싫어하거든요.

보면 작품 고르는 안목이 남다른 것 같은데, 작품 선택할 때 어떤 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제일 중요한 건 이야기에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인물을 보여주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관객들과 어떻게 소통할까, 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거 없으면 제가 할 이유가 없는 거고. 소통의 문젠데, 정말 이야기 안에 있는 인물이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 그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작품이냐 아니냐가 제일 중요해요. 역할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이야기가 제일 중요하죠.

우리 삶에 있어서 지금 늘 초점은 늘 ‘어떤 사람이냐’에 맞춰져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어떤 식으로 살았기에 이 사람이 이런 식으로 초점이 맞춰졌느냐 거든요. 그러니까 그 ‘삶’이라는 게 저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 그 안에서 누구나 겪지 못하는 과정. 그 환경이 그 사람을 그런 식으로 변하게 만드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역할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죠.

그러면 개인적으로 어떤 장르를 선호하는지? 그 이야기, 삶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는?

편하다기보다는 인물이나 삶에 대해 좀더 이해할 수 있겠다 싶은 건 휴먼드라마나 멜로, 사랑이야기. 주위에서 늘 보고 늘 감동 받고, TV를 통해서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나 주변 친구를 통해서나 늘 이야기 듣고 보고 듣고 감동을 받고 공감할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얘기할 때 좀더 자신이 있죠. 왜냐면 같이 느낄 수 있는 공감대가 기본적으로 형성되어 있으니까.

배우 황정민은 어떻다, 하는 평가들을 많이 내리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황정민은 어떤 배우인가요?

저는 어떤 배우일까요? 그냥 저는 배우에요. 직업이 배우인 배우. 수많은 사람들의 직업이 수없이 많잖아요. 저도 직업이 배우일 뿐이에요. 전 그게 제일 좋은데? (웃음)

뮤지컬로 데뷔하셨고, 노래도 잘 하시는 걸로 유명하고, 연극, 영화 등 다양한 극을 해왔는데, 어떠세요? 연기하는 건 다 비슷하겠지만…

맞아요. 연기는 다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좀더 힘들다거나, 아무래도 연극 같은 경우는 현장감이 더 있고….

그렇죠. 물론 판은 다르지만 연기를 하는 건 똑같고, 그 인물을 풀어내는 거나 소화하는 방식도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작업하고 있고, 그게 제가 하는 작업의 기본이어서 지금도 똑같이 하고 있어요. 간혹 “영화 연기랑 연극 연기랑 뭐가 다른가요?” 하고 질문하면 난처해요. 그냥 똑같은데…. 연극할 때 관객들 바로 앞에서 연기하는 그 느낌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영화에서는 카메라 앞, 여러 스탭들 앞에서 하니까요.

근데 드라마는 아직 안 하셨어요?

예, 드라마는 아직 계획은 없고요. 아직 불러주는 분이 없어서. 배우는요, 진짜로 찍힘을 당해야 비로소 배우인 거에요. 그니까 “이 작품에 당신을 캐스팅하고 싶습니다”라고 제의가 들어올 때, 그 때 비로소 배우인 거잖아요? 아니고서야 무슨 배우겠어요, 하지도 않는데. 그만큼 직업 자체가 좀 수동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늘 기다립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늘 기다리는 입장이 맞고요. 조마조마하고 그런 건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어쩌겠어요, 배우인데.

지금은 작품을 골라서 하시잖아요? 물론 예전에는 그렇게 조마조마하면서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겠지만.

그렇죠. 조마조마했었고, 지금은 좋은 시절인 거고, 시간이 지나면 초반처럼 그렇게 조마조마하면서 기다릴 거고. 앞으로의 일은 모르는 거지만, 중요한 건 이렇게든 저렇게든 간에 그냥 배우로서 오롯이 있는 거죠. 이것저것 생각하면 배우 못해요.

저는 뮤지컬 무대에서도 황정민 씨를 만나고 싶어요.

예, 내년에 꼭 할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 작품도 나왔고, 예. 좀더 얘기를 해봐야 하지만 그렇습니다. 뮤지컬도 하고, 연극도 하고, 독립영화도 하고, 단편영화도 하고, 막 다 해볼 거에요. 다 하고 다양하게 뭔가를 계속 할거에요. 그래서 관객 분들이 골라서 즐기시게끔 저는 계속 할거에요. 그게 배우로서 해야 할 도리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야 배우 아닌가요? (웃음)

외모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제 외모요? (웃음) 뭐, 별거 없죠.

정말 그럴까요? 저는 황정민 씨를 처음 뵈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굉장히 이국적으로 생기셔서. 눈동자 색깔이 옅어서 그런가요?

아하하.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눈동자가 많이 갈색이라.

또 한 가지는, <사생결단>을 보면서 느꼈는데 옷발이 잘 받아요. 거의 마지막 장면에 보면 나팔바지 정장을 입었는데, 그 옷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남자는 처음 봤거든요.

저요? 그런가요? 하하하하. 근데 저는 옷에 대해서는 정말 문외한이에요. 보통 남자들 다 그렇지 않나요? 전 특히 그런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 주는 대로 입습니다. 진짜로 주는 대로 입습니다. <사생결단> 때 그렇게 느끼셨다면 저한테 잘 어울리는 옷을 잘 골라주신 의상팀 팀장님한테 감사해야 할 일이고….

배우로서 그런 것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단지 옷발이 잘 받는다, 그런 개념이 아니라 캐릭터 표현하는 데 있어 의상이 차지하는 부분도 상당히 크니까.

물론 그건 그렇죠. 어떤 인물을 맡았을 때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의상이니까. 그런데 저는 그런 부분을 전혀 모르고, 철저하게 그런 프로패셔널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을 백만 퍼센트 믿어요. 그냥 딱 믿고 다 알아서 해주십시오, 라고 하는 편이에요. 늘 잘 해주시니까 저야 고마울 따름이죠.

그건 그렇지만, 잘 소화해 내는 것도 배우로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고, 또 중요하죠.

음… 예. 그건 그래요. 옷이 걸맞는다는 건…. 처음에는 옷이 내 옷 같지 않죠. 하지만 어느 순간에 그 옷이 내 옷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모든 게 다 내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비로소 관객들은 그 인물을 이해하고 그 인물을 보게 된다는 거거든요? 그건 분명히 배우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면에서 저는 배우의 외모, 그리고 외모를 어떻게 가꾸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그 가꾼다는 게, 예뻐 보이고 이런 개념이 아니라 그 인물에 대해서 가꾼다는 거죠. 왜냐면 그 인물은 움직이질 않아요. 그럼 황정민이라는 사람이 그 인물, 역할을 연기할 때 이 움직이지 않는 인물을 데려올 것이냐, 아니면 내가 갈 것이냐인데, 저는 다가가는 편이에요. 다가가도 이 사람은 멀어져 있어, 어느 순간에(웃음)…. 그럼 또 다가가. 늘 그런 작업이에요. 그런 싸움.

본인의 외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는 별로… 아 미치겠다. 한 번도 저는 제 얼굴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진짜에요. 어릴 때부터 ‘연기만 잘하면 되지, 얼굴은 뭐’ 그런 생각을 늘 해와서 그런지 좀 관리를 안 하는 편이에요. 그런 면에서는.

제가 오늘 <검은집>에 대해 충분히 질문을 했나 모르겠어요. <검은집>에 대해 더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하세요.

아니에요. 충분히 얘기 다 한 것 같고… 관객들 기대치만 높아지면 안 되요. (웃음) 재미있게만 보시고, 즐기기만 하시면 됩니다. 또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그간 나왔던 한국공포영화랑은 좀 다르다는 것. 그 정도요.

마지막으로, 황정민 씨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요?

늘 행복한 집에 살고 싶어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죠. 모범답안이잖아요. 근데 살면서 그게 늘 그럴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거지. ‘즐거운 나의 집’이 늘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저는 늘 ‘황정민 집’ 같이 살고 싶어요. 늘 “너네 집 같다”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는. 다른 거 없이. 특출 나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어도, 쉰 김치를 놓고 밥 물 말아서 후루룩 먹으면서도 맛있다, 마음이 풍족한 그런 집이길 바라요.

진행_ 한보연 기자

사진_황원(로이 스튜디오)

동영상_조승제(지오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