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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Park/interview

<MBC 가이드 인터뷰> '사랑한다면'의 박신양

영혼의 자유를 숭배하는 이상주의자


박신양에 대해 이미 알려진 이야기들

박신양은 1968년 서울생이다. 우리 나이로 서른.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라고 하기엔 적지 않은 나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에서 연극을 공부하며 재학 중 단편영화 <가변차선>에 출연했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유리>를 만든 영화감독 양윤호가 제작한 그 영화는 그 해 단편영화제를 휩쓸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러시아 4대 연극학교인 셰프킨 대학에서 1년, 슈킨대학에서 2년간 연극을 공부했다.

 

그의 데뷔작은 파격적인 묘사로 공연윤리위원회와 불교계의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영화 <유리>, 드라마는 지난해 출연한 수목 드라마 <사과 꽃 향기>.

 

그는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차분한 연기력과 신선한 마스크로 주목받고 있다. 어쩌면 조만간 스타 대열에서 만나게 될는지 모르는 유망주, 운이 좋았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순조로운 시작이다.

 

박신양은 모든 운명은 사는동안 우연히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축학도가 꿈이었던 그가 연기자의 길로 접어든 것이 고등학교때 같은 반 친구가 무심코 던지 “영극영화과를 가지그러냐?” 하는 한마디였고, 우연히 보았던 한 편의 연극이 지망학과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 감독 양윤호가 감독 데뷔 작품으로 만들고자 했던 <유리>는 마침 러시아에서 공부하던 그가 품에 꼭 껴안고 읽던 책이었다. 그 정도의 작품이라면 그는 공부를 중단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대답

-셰프킨 대학에서 슈킨으로 학교를 옮긴 까닭은?
 

“셰프킨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슈킨대학의 연극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리듬과 몸짓만으로 연기하는 대단히 실험적인 연극이었어요, 대학 시절의 경험을 미루어 볼 때 그런 공연을 가능케 하는 교수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감이 컸습니다. 전 실험성과 현대적인 느낌을 원했는데 셰프킨의 교수님들은 나이 드신 분이 많았어요.”

 

-그렇게 열정을 바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 까닭은?

“<유리>만큼은 제가 꼭 하고 싶었던 작품이거든요. 하지만 그것을 기회로 삼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빨리 성공하고 싶었다면 대학을 두 번 간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거지요, 그리고 학위가 목적이었다면 대학원에 갔을 겁니다. 제가 공부하고 싶었던 건 연기자의 실질적인 훈련 시스템이었어요. 저만이 가질 수 있는 보다 다양하고 독특한 연기 경험을 위해 유학을 갔습니다. 대학원은 아무래도 학문 중심으로 흐르기 때문에 연기를 배우기 위해서는 대학에 진학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지요. 유학을 다녀온 만큼 인정받을 거라고는 기대 하지 않았어요. 그것으로 인한 투자가치도 원하지 않았고요. 학위를 위해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계속적인 연극수업을 받았음에도 무대에 서지 않고, 영화나 드라마에만 출연하는 까닭은?

 

“제가 연극을 하겠다고 동숭동으로 나가면 먼저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겁니다.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 귀국해 지금 무대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과 공연하고 싶을 때 함께 할 겁니다. 지금 연극계의 실정은 창작극이 매우 적습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나 영화는 창작을 기본으로 하죠. 그런 면에서 오태석 선생님을 존경하는데, 한국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연극에 담길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분이시거든요.”

-간혹 연극 무대에 신인 연기자들이 오르는 경우 흥행을 위한 상업적인 목적이기 쉬운데 나중에 그런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지?

 

“돈을 번다는 건 중요합니다. 연극도 충분히 상업적이어야 해요. 대학 시절 한 교수님이 차라리 스타가 되라고 말씀하신걸 무척 아프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형식이나 내용에서 질적으로 최고급이 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마땅한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제가 무대에 서는 이유가 관객을 불러 모으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상관 없습니다. 일단 기회가 오면 무대에 서서 그들의 인식을 바꿀 자신이 있습니다."


박신양이 아직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

어렸을 때 그가 무엇보다도 싫어했던 것은 경찰과 의사였다. 타인에 대한 그들의 당당함과 자신감이 싫었다. 대체 그들이 무엇을 알고있길래 하는 반발심 때문이었다.

 

박신양은 약자나 사회적 제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죽음에 대한 연구>를 읽기 전에는 <태백산맥>을 탐독했다.

 

대학 시절에는 사회 과학 서적을 읽으면서 연극을 통해 소리내기를 하면 어떨까 심각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큰소리로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사회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용도 없이 목소리만 커지는 연극보다 작은 것이라도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연극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소 이상주의자처럼 보이는 박신양은 말없이 조용하게 사는 사람을 좋아한다. 가끔 마주 않은 사람의 영혼이 느껴진다는 그는 영혼의 크기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종교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관습이 싫어서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 다닐적에는 학교 안에 있는 법당에 자주 들렀다. 공연을 앞두고 뭔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는 법당 에 앉아 조용히 명상에 잠기곤 했다. 그가 불교적 이미지와 가까운 것은 아마도 그런 영향 때문이리라.

 

그는 채플린을 좋아한다. 진실은 농담처럼 할 때 더 잘 들리게 마련이다. 채플린은 그선을 잘 보여주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콥스키, 영화 <노스탤지어>에 나오는 안콥스키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그가 만난 배우로서의 안콥스키, <이주자들의 연극>이라는 작품에서 안콥스키를 보고 그는 러시아에서 온 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유리>와 비슷한 작품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유리>는 그에게 있어 최선을 다해 끝내놓은 숙제이다. 한번 마친 숙제를 다시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 전 두 번째 영화 <쁘와종> 촬영을 마쳤는데, 그 영화를 섹스코미디라고 홍보하는 영화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영화의 줄거리는 교류가 단절된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들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쏟아놓은 말들에 구속받고 싶지 않습니다. 발견하지 못한 자유를 찾기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무엇도 저를 가두지 않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이 기록들은 모두 허위이다.

 

 

글, 한지혜 자유기고가
출처 - MBC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arker111&logNo=60126174762&categoryNo=1&parentCategoryNo=0&viewDate=&currentPage=1&postListTopCurrentPage=1&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30&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