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삼각 구도가 아닙니다. 감춰진 출생의 비밀 드러나며 진한 사랑을 맛보게 될 겁니다”
세상에 있는 온갖 형용사론 표현이 부족하다. SBS-TV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드라마 촬영장에서 주인공 박신양을 만났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배우의 카리스마가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 그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사랑까지도 성공할 수 있는 황태자 “내 여자한테서 손 떼라 그랬다. 죽고 싶지 않으면. 33년 동안 날 이기지 못했으면 60살이 돼도 날 이길 수 없는 거다. 명심해라. 내 여자를 봐서 한번 참아주는 거다.”
큰 울림이었다. 발음 좋고 저음의 발성이 강한 박신양(34)의 목소리가 촬영장 전체를 휘감아 돌고 있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과 날카로운 눈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스태프는 물론이고 구경하던 이들 모두 순간 ‘얼음’이 된 듯했다. 그리고 그의 연인인 김정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비아냥거리는 배우 이세창을 향해 날리는 한 방. 곁에서 말리는 배우들이 없었다면 연신 주먹 세례라도 퍼부을 기세다.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선하게 웃으며 자분자분 대화를 나누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어느새 극중 ‘기주’로 돌아가 쉬지 않고 대사를 날린다. 촬영 전 여러 번에 걸쳐 동선을 그리고 상대방의 낙하 지점을 지적하고 시선을 체크하던 그였다. 꼼꼼하고 완벽한 그의 성격은 단 한 번 촬영 장면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모니터는 직접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론 매니저와 코디, 헤어 담당자 등 세 명이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영화 촬영과는 달리 진행이 빠른 드라마는 어쩔 수 없이 주위 사람들의 신세를 지는 것이다. 눈짓과 손짓으로 OK 사인을 주고받는다. 야구 감독과 선수들이 먼발치에서 사인을 보내는 것처럼 빠른 손놀림이 오간다.
요즘 ‘박신양 어록’이 인기다. 매회 방영이 끝나자마자 박신양의 대사는 셀 수 없는 인터넷 조회 건수를 올리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흔들어놓는다. 영화에만 집착하던 그에게 수많은 드라마 연출자들의 길고 긴 손길이 이어졌다. 때론 친분 관계를 이용해 그를 안방극장에 복귀시키려고도 했다. 그러던 그가 ‘파리의 연인’ 대본을 받아든 순간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고 한다. 욕심이 났다. 대본을 여러 번 읽으면서 완벽하게 ‘기주’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인사법은 언제나 악수다. 고개를 숙여 하는 인사엔 정이 없다고 했다. 형식적으로 나누는 목례가 성의 없어 보인단다. 드라마 촬영 전 서른 명이 넘는 스태프들과 일일이 악수를 권한다. 촬영이 끝나면 다시 한번 악수를 권한다. 힘이 들어간 손과 시선을 맞추는 눈에서 팀워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외국에선 볼을 비비잖아요. 그것처럼 좋은 인사가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여기서 그런 인사를 했다간 오해받기 십상이죠. 그래서 난 악수가 좋아요.”
그가 정치인이 된다면 어떨까? 악수를 권하는 그에게 “정치 한번 해보시죠”란 말을 건네자 “정치는 싫어하는데 경제는 좋다”고 답한다. “돈을 좋아한다”는 뜻이냐고 되묻자 “비즈니스맨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라고 한다. 청담동에서 직접 경영하고 있는 가구 매장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그는 혼자서 며칠이고 디자인만 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바쁜 드라마 일정 때문에 구상만 한다고. 드라마가 끝나는 대로 본격적인 비즈니스 활동을 할 계획이란다. 비즈니스맨으로서 자신을 평가해보라는 요청에 뜬금없이 유머론을 역설한다.
“비즈니스맨에게 있어서 유머는 필수예요. 농담을 즐기긴 하는데 상대방을 화끈하게 웃기진 못해요. 전 한다고 하는데 다들 썰렁하대요. 저의 하이 코미디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웃음)”
매니저와 코디네이터,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등 그와 함께 다니는 식구들은 그의 썰렁하고 엉뚱한 행동에 익숙해져 있다. 그가 한마디 던지면 모두 박장대소를 한다. “그렇게까지 웃기지 않은 말에 웃어주다니 다들 성격 좋다”고 하자 “박신양씨가 무척 좋아한다”며 귀엣말을 한다. 그러나 가끔 박신양이 그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일도 있다. 애견 농장에서 촬영이 있던 날, 촬영이 일찍 끝났다. 화창한 날씨 탓인지 박신양이 즉석 제안을 했다. 야외 바비큐 파티를 열자는 것. 직접 돼지고기를 사러 나간 그는 어른 손바닥만한 굵기의 고깃덩어리를 사왔다. 그리고 바비큐 그릴에서 고기를 굽다 말고 그가 한마디 던졌다.
“우리 매니저, 코디네이터, 헤어 담당자 모두 무게가 좀 나갑니다. 그래서 ‘유도팀’이라고 부르죠. 물론 매니저 빼면 모두 여성입니다. 이 친구들 먹는 걸 무척 좋아해요. 그릴 위에 올려놓은 목살 있죠. 이 친구들은 쌈에 고기를 싸 먹지 않습니다. 반대로 고기에 쌈을 싸 먹죠. 손바닥만한 목살에 상추와 마늘을 넣고 그냥 한 입에 넣습니다. 아마 곧 보게 될 겁니다. 날이면 날마다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잘 보십시오.”
그날 현장에 있던 ‘유도팀(?)’은 박신양을 만난 후 가장 많이 웃었다고 한다. 이는 박신양이 최근 남긴 가장 웃긴 농담이라는 것.
박신양의 휴대폰엔 장식이 없다. ‘누구누구 휴대폰’ ‘사랑하는 누구’ 등 이름 석자나 유치찬란한 수식어 하나 없이 ‘썰렁’하다. 처음 받았던 그대로 ‘쬎쬎텔레콤’이 전부다. 전화벨을 바꾸는 것은 물론 컬러링도 할 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상대역인 김정은이 그에게 벨소리를 선물했다. 선물을 받고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별 반응이 없자 김정은은 적잖이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긴 것이었다. 김정은이 미리 알리지 않고 선물을 날리자 박신양은 스팸 메일로 착각하고 바로 삭제 버튼을 꾹 누른 것이다. 결국 김정은은 다시 한번 벨소리를 선물해야 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벨소리가 울려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랫소리가 들리니까 어디서 음악을 틀어놨다고 착각하게 되거든요. 벨소리는 따르릉이 최고죠.” 상대 배우를 편하게 해준다고 알려진 그에게 김정은은 제대로 만난 파트너다. 대본을 받아들고 연습을 할 때면 미리 애드립을 짜둔다. 대본을 전면 수정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맞받아쳐야 하는 대사를 연습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자연스러운 연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박신양은 음식도 철저히 따진다. 커피는 하루 5잔.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데 설탕과 크림은 절대 삼간다. 바게트 빵은 그의 아침식사 메뉴다. 간혹 ‘바게트 샌드위치’를 만들어 변화를 주기도 한다. 또 오전중에는 절대 탄산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정오가 지나면서 한두 잔씩 마시기 시작한다. 이유를 묻자 징크스란다. 아침에 탄산음료를 마시면 대사의 흐름을 놓친다는 것. 매운 음식은 저녁때만 먹는다. 그는 나름대로 음식에 대한 룰을 정해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연기를 하다 보면 그 룰대로 따르기가 힘들다. 그의 스태프들이 사이사이에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세심하게 챙겨준다.
“먹고 싶어서 먹는 건지 아니면 주니까 먹는 건지 이젠 헷갈려요. 이 친구들이 워낙 잘 챙겨주니까 제가 맘놓고 연기에 빠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의 취미는 헬스클럽에서 몸 만들기. 배우는 몸이 재산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내와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곳도 헬스클럽이었다. 그만큼 그는 운동에 푹 빠져 지낸다. 그의 타고난 승부 근성은 이곳에서도 발휘된다. 어쩌다 동료들과 같이 가면 그들보다 걷기도 더 오래 걸어야 하고 역기는 두 배 이상 차이 나게 들어야 성이 풀린다. 그는 “취미 생활을 하면서도 긴장을 하게 된다”며 ‘처절한’ 농담을 건넨다.
촬영이 없는 날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재즈나 클래식도 좋아하지만 가요를 즐겨 듣는다. 그룹 GOD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가 그의 애창곡이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은 첫 회가 방송되기 전부터 시샘을 많이 받았다. ‘유치할 것이다, 뻔한 스토리다, 주말 늦은 저녁 시간대에 성공한 드라마는 없었다’등 부정적인 평가 때문에 그는 더욱 긴장을 했다. 하지만 첫 회가 방영된 후 ‘대박’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래서 배우와 스태프 모두 힘든 줄도 모르고 흥에 겨워 촬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청률 1위에 랭크되던 날, 배우든 스태프든 잠 한숨 못 자고도 하루 종일 즐거운 농담과 큰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배우들은 캐릭터 를 더욱 철저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노력은 자연스럽고 실감 나는 연기로 나타나고 있다.
연기 잘하는 배우 박신양은 지금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요즘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칭찬에 몸둘 바를 몰라한다. ‘데뷔 이후 스타 대열에서 단 한 번도 밀려난 적이 없다, 연기에 확실히 물이 올랐다, 연기가 신의 경지다’ 등. 주말이면 어김없이 안방극장을 찾아와 멋드러진 연기 ‘사위’를 벌이는 박신양. “팬으로서 사랑하겠다”며 악수를 건네는 것, 그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선물일 것이다.
글 / 강수정 기자 사진 / 최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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