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 글 조연경 기자/사진 이재하 기자]
'황정민' 하면 역시 '겸손'이다. '어이, 브라더!'를 그토록 맛깔스럽게 외쳤으면서도 모든 공은 당연하듯 동료 배우들에게 돌린다.
영화 '신세계'(감독 박훈정) 개봉 후 관객들은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개봉 11일만에 250만 명을 돌파한 객관적 수치는 이를 충분히 대변한다. 포인트도 다르다. 이자성(이정재)에 흠뻑 빠진 관객이 있는가 하면 정청(황정민) 이중구(박성웅) 때문에 눈물을 흘린 이들도 상당하다. 강과장(최민식)은 더 이상 말해 뭐할까.
당연히 극찬받을 것이라 예상했던 이정재, 어떤 말을 붙이는 것 조차 아까운 형님 최민식에 대한 반응은 '역시나'다. 하지만 '신세계'가 쥔 진짜 무기는 정청 황정민과 이중구 박성웅이었다. '깡패 연기를 잘해봐야 얼마나 잘하겠어'는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언론시사회 직후 쏟아진 찬사는 일반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신세계' 개봉전 뉴스엔과 인터뷰에서 황정민은 시종일관 싱글벙글한 모습을 보였다. 워낙 성격좋고 매너좋기로 유명한 배우지만 의미없는 웃음은 분명 아니었다. 입술을 씰룩씰룩, 터질듯한 광대를 억지로 숨기려던 황정민은 "사실 우리끼리는 '제발 미리 샴페인 터트리지 말자. 바보되기 십상이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좀 참는 중이다"고 귀띔해 폭소를 자아냈다.
"설령 우리 눈에는 좋아보여도 관객들에게는 아닌 작품들도 있지 않나"는 말로 조심스레 운을 뗀 황정민은 이어 "'신세계'는 딱 보면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인건 사실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많아야 하는데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창피할 것 같더라"고 솔직한 심경을 토로, "근데 반응이 꽤 쏠쏠한 것 같긴 하다"며 결국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신세계' 배우들은 하나같이 최민식이 깔아놓은 판에서 물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뛰어 놀았다고 말한다. 황정민 역시 마찬가지. 영화에서 가장 신명나 보이는 사람을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정청을 택한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확실한 선을 그으면서도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인물이 바로 정청이다. 자신이 양아치임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 정청의 매력은 관객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젊은 스태프들이 최민식 선배님께 '선배님 대체 왜 이러세요'라고 말할 정도로 최민식 형님은 현장의 중심이셨다. 일부러 장난을 치며 현장 분위기를 편안하게 주도하는 것을 물론, 후배들을 위해 연기적으로도 한 발 물러나 계셨다. 알아서 정리를 해주시니까 우리로서는 제대로된 연기로 보답하는 수 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정재는 나름 힘든 부분이 많았을텐데 난 진짜 정신없이 놀았다. 하하."
황정민은 이정재에 대해 한없이 애틋한 마음을 내비쳤다. 극중 정청 '브라더' 이정재는 현실의 황정민에게 '얼굴마담'이 돼 있었다. "난 우리 얼굴마담만 믿었지. 흥행? 얼굴마담이 다 해주실거야"라고 한껏 너스레를 떤 황정민은 '앙상블'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깨우쳤다며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정재 역할이 정말 어려운 캐릭터다. 해도 티 안나고 안하면 안했다고 욕먹기 딱 좋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많이 나눴다. 정재도 우려되는 부분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민식이 형이나 내가 있는걸 안할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해 해주는게 너에게도 독이 아니라 이득이 된다. 어떤 식으로 해야할지는 네 나름대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고 말해줬다. 그 때부터 앙상블이 조금씩 더 쌓여진 것 같다. 정재는 그 답을 찾았고 이자성을 훌륭하게 만들어냈다. 진짜 멋들어진 배우다."
"나한테 굳이 뭘 연기할 필요가 없대요. '그런게 어딨냐'고 하니까 나는 가능하다고. 그 촉이 탁월하지 않았나..으하하"
'정청을 해줘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황정민이 하지 않았으면 어쩔뻔 했나 싶고 황정민이 아닌 영화 '신세계' 깡패 정청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는 등장부터 화려하다. 공항에서 '브라더!'를 외치며 해맑게 웃는 정청의 얼굴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정청을 빛내는 단 하나의 소품은 깜짝 옵션이다.
그렇다면 정청을 연기한 황정민 역시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이건 내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황정민은 "내가 재밌게, 즐겁게, 잘 할 수 있겠구나 싶긴 했지만 절대 나 혼자만 잘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무조건 나 혼자 달려갈 수 있지도 못했고. 고민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놓치고 싶진 않았다"고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황정민이 처음 '신세계'를 제의받은 것은 3년전 '부당거래' 개봉을 앞둔 때였다. 당시 '부당거래' 프로듀서였던 현 제작사 사나이픽쳐스 수장 한재덕 대표는 황정민에게 "너에게 딱 맞는 역할이 있다"며 그를 '신세계'에 끌어들였다. 워낙 막역한 사이였던데다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던 터라 황정민 역시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재덕 대표의 눈은 황정민의 말마따나 '탁월'했다.
"몇몇 분들은 ''달콤한 인생'(2005) 백사장이랑 똑같은 캐릭터 같은데 왜 하냐'고 하더라. 근데 난 막상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백사장을 또 하면 어때? 더 괜찮지 않나?'라는 괜한 오기까지 생겼다.(웃음) 배우가 늘 같은 역할을 하다보면 어떤 때는 할 수 있는 역할이 좁아진다. 하지만 백사장은 백사장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설마 그대로 보여지겠어? 똑같으면 어떡하지?'라며 속으로는 내심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하하."
장난스레 말하지만 황정민은 스스로 정청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영화 자체의 스토리가 다른데다가 정청 나름의 매력은 분명 존재했다. 황정민은 "느낌적으로는 비슷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오히려 비슷한 캐릭터를 표현하기위해 연구하다보니 나에겐 또 다른 공부가 됐다"며 "물론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좋았다. 180도 다른 역할을 연기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놀라운 점은 황정민이 정청을 분석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이자성 이정재였다는 것이다. 황정민은 '정청을 통해 자성이라는 인물이 보였으면 좋겠다' 싶었다고. "내가 나오는 장면이라도 관객은 자성을 떠올리길 바랐다"는 황정민은 "그러기 위해서는 정청 자체에 자성이 묻어나야 했다. 촬영 전부터 가장 크게 염두해뒀던 내 비밀이다"고 전했다.
A부터 Z까지.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절대 자신만 돋보이려 하지 않는 황정민이다. 이 배우의 선택과 노력, 거침없는 연기 덕택에 관객은 또 한 번 행복했다.
'신세계'는 대한민국 최대 범죄조직 골드문에 잠입한 형사, 그를 둘러싼 경찰과 조직이라는 세 남자 사이의 음모, 의리, 배신을 그린 작품이다. 2월 21일 개봉 이후 개봉 11만에 250만 명을 돌파,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황정민이 '신세계' 프리퀄을 기대하게 만드는 '6년전 여수' 영상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짝 귀띔했다.
황정민은 최근 뉴스엔과 인터뷰에서 영화 '신세계' 엔딩 후 등장하는 이자성과 정청의 청춘시절 영상이 1999년 정우성 이정재의 '태양은 없다'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많다는 말에 "제대로 보셨다. 프리퀄을 노렸다기 보다는 내가 정우성을 노렸다"며 "꽃남방도 '태양은 없다'에 나오는 정우성을 따라한 것이 맞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그는 "어떻게 해야 관객분들이 조금이나마 위트있고 재밌게 봐주실까 고민이 많았다. 꽃남방도 그 고민중 선택된 소품이다"며 "촬영을 할 때 정재가 걸어오는 모습들을 보면서 '태양은 없다'가 많이 생각났다. 사실 그 영화를 내가 원래 좋아한다. 보기엔 이래도 청춘얘기 성장영화가 땡긴다. 왜? 안 믿겨?"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신세계'의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이자성과 정청의 6년전을 보여주는 여수 횟집 장면은 정청이 왜 그렇게 이자성을 '브라더'로 아끼는지, 경찰 이자성이 깡패 정청을 신뢰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게 한다. 둘의 관계를 영화 중간중간 설명해 줬다면 조금 더 친절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황정민은 이 고민엔 처음부터 'NO!'를 외쳤다.
"'믿음의 이유가 뭔지 보여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라는 것을 두고 끊임없이 말들이 오갔다"고 운을 뗀 황정민은 "난 무조건 반대였다. 그런 부분은 관객들의 상상에 맞기고 싶었다. 꼭 떠먹여 줘야 하나 싶었다"며 "관객들이 생각할 수 있는 영역까지 침범하면, 다 알려주고 나면 무슨 재미일까. 영화는 그런게 아니라 생각했다"고 소신있는 생각을 전했다.
"내가 영화를 볼 때 좀 좋아하는게 뭐냐면, 등짝을 의자 등판에서 떼게 만들 정도로 스크린 속 배우들과 같이 긴장하는 그 묘한 분위기다. 관객들이 돈과 시간을 투자해 편안하게 보고자 하는 영화지만 그 편안함을 굳이 내용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것은 사실이다. 친절하고 편안한게 아니라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자성 정청의 이야기를 더 녹여내고 싶다면 아예 2탄을 만들면 되지.(웃음)"
'신세계'는 이자성과 정청이 처음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시작하는 시점 자체가 모든 풍파를 이겨내고 골드문에 입성한 후이기 때문. 6년전 여주 신 역시 처음 시나리오에는 없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처럼 몇년 후 이들의 이야기를 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박훈정 감독은 애초 '신세계'를 3부작 시리즈로 생각했고 끝없는 아이디어 회의 끝에 지금의 '신세계'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황정민은 "우리의 과거를 아주 살짝 들췄으니까 관객들도 더 흥미로워하지 않을까 싶다. 이정재 역시 동의했던 부분이다"며 "'신세계' 팀이 처음부터 염두해뒀던 부분은 제발 건달 얘기에 '멋'을 넣지 말자는 것이었다. 한없이 멋부릴 수 있는 소재다. 그런 영화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옷을 입어봤자 건달 태생 어디 가겠냐'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좋은 옷만 갖춰 입었다고 해서 내실이 변할 수는 없다. 그런 척 하는것과 진짜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이중구 정청 역시 괜찮은 인생인 척 할 뿐이다"며 "나는 양아치니까 양아치스럽게, 경찰도 양아치지만 분명 경찰스럽게 보이는 것이 맞았다. 때문에 이정재는 양아치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기도 해야했다. 그래서 정재의 그 묘한 얼굴이 좋았다"고 작품과 배우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신세계'는 대한민국 최대 범죄조직 골드문에 잠입한 형사, 그를 둘러싼 경찰과 조직이라는 세 남자 사이의 음모, 의리, 배신을 그린 작품이다. 2월 21일 개봉 이후 개봉 17만에 300만 명을 돌파,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조연경 j_rose1123@ / 이재하 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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