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닷컴] (글=이동진) 오승욱 감독의 영화 ‘킬리만자로’(2000년작)는 너무 일찍 나왔던 수작이었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충무로에서 돌출하듯 튀어나왔던 이 ‘남자 영화’는 하드 보일드의 강렬한 매력을 선보였지만 결국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오승욱 감독은 이후 준비하던 몇몇 작품의 기획들이 번번이 무산되어 아직껏 두번째 작품을 내놓지 못하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킬리만자로’의 매력을 잊지 못한 어떤 관객들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여전히 이 작품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형사인 형 해식과 깡패인 동생 해철의 이야기를 비장하게 다룬 ‘킬리만자로’는 주연 배우 박신양의 1인2역이 제대로 빛을 발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그 영화 ‘킬리만자로’를 다시 상영하고 감독-배우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지난 6월13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있었습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함께 하는 다시보기’의 2009년 6월 행사로 열린 이날 상영회에서는 오승욱 감독과 오랜만에 관객들 앞에 선 배우 박신양씨가 함께 참석해서 시종 유쾌하게 ‘관객과의 대화’를 했습니다.
오승욱 감독이 연출하고 박신양이 주연한 영화 '킬리만자로'
이동진-오늘 저는 무척 오랜만에 ‘킬리만자로’를 다시 봤습니다. 그런데 엔딩 타이틀 시퀀스가 다 끝날 때 나오는 맨 마지막 자막인 ‘2000년 5월’까지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도 아닌데 말입니다. 감독님도 오랜만에 보셨죠? 오늘 이 영화를 이런 자리에서 다시 관객들과 함께 보시니 느낌이 어떠십니까.
오승욱-저도 5년 만에 다시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웃음) ‘킬리만자로’를 데뷔작으로 만들고 나서 지난 9년 동안 차기작을 준비하다가 무산된 것만도 벌써 서너번이니까요. 그 사이에 먼 길을 왔기 때문에 이젠 ‘킬리만자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어요. 다시 이 영화를 보면, 나쁜 기억만 떠오르기도 하고요.
박신양-아직도 그러세요?(웃음)
오승욱-죽을 때까지 못 잊을 거에요. 근데 오늘 본 프린트는 상태가 상당히 좋아서 다행이네요.
이동진-박신양씨는 오늘 이런 자리에 참석하시니 어떻습니까. 9년 전 영화라서 당시 기억들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으실 수도 있을 텐데요.
박신양-네, 그 사이에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것 같아요. 오랜만에 다시 보니까 배우든 스태프들이든, 그때 다들 정말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웃음) 그런데 아까 이 영화를 보시면서 뭉클하다고 하셨는데, 저도 확실히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킬리만자로’라는 영화만이 가진 어떤 분명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는 1분만 봐도 ‘킬리만자로’다운 뭔가가 있어요.
이동진-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9년 전 시사회 자리가 기억납니다. 첫 장면에서 해철이가 스스로의 머리에 총을 쏘고 연기가 풀썩 피어오르면서 벽에 걸려 있는 액자에 핏덩이가 쭈욱 미끄러져 흐를 때, 객석에서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거든요. 정말 ‘킬리만자로’는 강렬하면서 끈끈한 영화였습니다. 감독님은 이 데뷔작을 만들면서 당시에 무엇을 반드시 넣고 싶으셨습니까.
오승욱-눈밭에 두 남자가 있다, 그들은 무슨 사연 때문에 저러고 있을까,라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했어요. 그리고 그들이 결국 죽었을 때 자살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곳을 벗어났다는 느낌이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동진-그러면 ‘킬리만자로’는 마지막 장면에서부터 떠올리신 영화군요.
오승욱-그렇죠. 라스트 신에서 시작해서 다른 것들을 채워 넣은 셈입니다.
이동진-제목은 처음부터 ‘킬리만자로’였습니까.
오승욱-아뇨, 원래는 ‘바람의 기억’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문학적이라는 이유로 영화사에서 퇴짜를 맞고 바뀌게 된 제목이죠.(웃음)
이동진-저는 영화 속 박신양씨의 모습들 중에서 ‘킬리만자로’에서의 연기를 가장 좋아합니다. 특히 초반 30분 가량은 정말 좋습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1인2역을 하셨죠? 1인2역은 매우 특수한 연기 경험일 텐데, 당시에 어떠셨습니까.
박신양-저 혼자서 해식과 해철이 형제 역을 다 하는 게 좀 어색하기도 했고, 묘미가 있기도 했어요. 그런데 둘이 같은 프레임에 함께 나오는 장면을 찍을 때는 해철의 연기만 쭈욱 하고 나서 다시 해식의 연기를 연이어 한 게 아니라, 매번 왔다갔다하면서 찍었어요. 그렇게 촬영해야 제작비가 절감된다고 해서요.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 막대기 하나 세워놓고, 정말 원시적으로 찍었죠.(웃음)
오승욱-오프닝 신에서 해철이가 총을 겨눌 때마다 해식이가 이리저리 피하잖아요? 그 장면을 찍을 때 정말 힘들더군요. 한쪽에서는 허공에 대고 총을 겨누고, 또 한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 총을 상상하면서 피해야 했으니까요. 다들 그런 장면을 찍은 경험이 없어서 논전이 벌어졌기에 촬영이 계속 지연됐어요. 그때 결국 (박)신양씨가 제안한 방법과 조감독이 제의한 방식이 맞서게 됐는데, 면밀하게 따져보니 신양씨 말이 맞더군요. 그러자 민망해진 조감독이 신양씨에게 레모나 하나를 건네주더라고요.(웃음) 그 장면의 동선은 신양씨가 직접 합을 짰어요.
박신양-그래서 CG 비용을 많이 줄였죠.(웃음)
이동진-원시적으로 찍었다고 하지만, 9년 전에 처음 봤을 때는 그 장면들을 티 안 나게 잘 찍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해철과 해식이 강변에서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말을 잘라먹고 들어오는 대사 처리 방식까지 잘 묘사되었으니까요.
오승욱-그런 장면을 찍을 때, 신양씨가 존재하지 않는 상대방의 말을 상상하면서 연기하는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킬리만자로' 상영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 오른쪽부터 오승욱 박신양 이동진. /사진제공=한국영상자료원
이동진-이 영화에선 해철이란 캐릭터의 말투가 아주 독특합니다. 돈 꿔 달라는 말까지 “돈 좀 꿔 줍니다”라고 말을 건네니까요. 그게 또 캐릭터와 아주 잘 어울렸는데, 청유형과 명령형까지 “~합니다”라고 하는 그 이상한 말투는 어떻게 만드신 건가요.(웃음)
박신양-당시에 제 주변에서 많이 쓰는 말투였어요. 그게 참 묘한 게, 그렇게 말하면 본심이 드러나지 않아요. 그리고 힘들어 죽겠는데 ‘물 좀 줘’ 그러면 화를 내지만, ‘물 좀 줍니다’라고 하면 웃으면서 넘어갈 수도 있고요.
오승욱-자기 ‘가오’도 안 상하죠. 그게 제일 중요할 거에요.(웃음)
박신양-정서적으로도 참 센 영화라서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좀 변형시킬까 궁리하다가 나온 말투였습니다. 주변에서 그렇게 말 하는 것을 들을 때, ‘아, 이거다’ 싶었던 겁니다.
오승욱-원래 시나리오에서는 그런 말투가 없었어요. 그런데 신양씨가 해철의 그런 말투를 만들어왔죠. 처음엔 탐탁치 않았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직접 연기하는 것을 보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동진-감독님은 이 영화를 만들 때 표현 수위에 대해서 고민을 하진 않으셨습니까. 당시로서는 무척 파격적인 작품이었지만, 원래 의도를 살리셨다면 좀더 시각적으로 잔인하고 강렬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오승욱-그 정도로도 당시에 다들 용감하다고 한 마디씩 했어요. 누구보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차승재 대표가 가장 용감하다고들 이야기했죠. 이 영화를 찍을 때 차 대표께서 제게 “승욱아, 나 정말 용감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겁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손을 꼭 잡으면서 “대표님, 20만명 꼭 넘겨드릴게요’라고 했죠. 당시에는 서울 관객 20만명이 성공 기준이었거든요. 그런데 결국 거짓말이 됐죠.(웃음)
이동진-결국 관객 수가 어떻게 됐죠?
오승욱-10만명을 못 넘겼죠. 최종 관객 수가 9만8천명인가, 그랬어요.
이동진-이 영화는 보기만 해도 배우들이 정말 고생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일인이역에 매서운 추위에 강도 높은 액션 등, 허다한 난관 중에서 가장 힘든 건 어떤 것이었습니까.
“생각보다 호흡이 길다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호흡이 긴 만큼, 내내 에너지를 채워 넣지 않으면 그 길이가 메워지지 않을 테니까요. ‘킬리만자로’는 남자 영화이고 뚝심이 느껴지는 영화잖아요? 덕분에 촬영 기간 내내 에너지 소모가 컸습니다. 그런 느낌이 담겨졌기에 이 영화만의 매력이 생긴 거죠. 힘들긴 했지만 재미있었어요.”
이동진-감독님께 박신양씨는 어떤 배우였습니까.
오승욱-제가 데뷔한 지 9년이 지났지만, 이제껏 한 편 밖에 못 찍었기에 신양씨 외에는 다른 배우를 제대로 만난 적이 없어요.(웃음) ‘킬리만자로’는 팀웍이 참 좋았죠. 신양씨의 모습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건 제가 어떻게 연출해야 할지 잘 몰라서 헤맬 때 직접 해결해줬다는 겁니다. 밤길에 해식이가 유골함을 들고 걸어가는 장면이었는데, 디테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거든요. 그때 신양씨가 자신을 믿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알아서 한다는 거였죠. 그래서 카메라를 돌렸는데, 오르막길인 그곳에서 계속 올라가지 못하고 뒷걸음질치는 디테일을 만들어내더군요. 대사도 변형시켜서 캐릭터에 맞게 만들어왔고요. 그때 참 좋은 배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 초반에 어두운 골목길에서 상대방을 경찰봉으로 마구 내려치는 장면도 대단했어요. 영화라는 게 공기를 직접 찍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결국 배우가 연기를 하는 구체적 사실을 찍을 수 밖에 없는 것인데, 그날은 촬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골목 안에 긴장감이 팽팽했어요. 촬영을 시작하기 전인데도 신양씨가 기를 발산하면서 골목 안을 완전히 장악했죠. 찍기 전부터 이 장면은 오케이일 수 밖에 없겠다고 느꼈어요. 결국 연기를 끝내자마자 큰 소리로 “의자!”를 외치면서 곧바로 탈진하더군요. 자기 몸의 에너지를 전부 다 발산해버린 겁니다.
박신양-저는 다 잊어버렸는데 감독님은 그걸 전부 기억하시네요.(웃음) 그게 영화 속에서 해식이 가장 포악하게 날뛰는 장면이었죠. 그런 장면을 매번 찍게 되니까 촬영 내내 악몽을 꿀 수 밖에 없었어요.
이동진-이 영화에 대해서 가장 아쉬운 게 있다면 어떤 것입니다.
오승욱-횟집에서 벌어지는 클라이맥스 신에 대한 아쉬움이 아직도 있어요. 그때 정말 지옥도를 그리고 싶었거든요. 그 장면에서 신양씨가 수족관에 머리를 부딪친 후 유리가 깨지잖아요? 그런데 원래는 수족관의 물이 흘러나와서 바닥에 5센티미터 가량 출렁거리고 있고, 물고기들이 곳곳에서 파닥거리는 가운데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찍고 싶었죠. 사람이 죽었으니까 물론 그건 핏물일 거고요. 그런데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박신양-저희가 정말로 험한 영화를 찍었어요.(웃음) 감독님이 미대를 졸업하셔서 이미지에 강하신 듯 합니다. 그래도 그 정도면 많이 하신 거 아닌가요.(웃음)
이동진-한 두 마리 정도지만, 물고기가 바닥에서 파닥거리는 장면이 현재도 들어 있긴 하죠.(웃음)
오승욱-그렇죠. 날도 엄청나게 추운데다가 연이어 밤을 새워 촬영하고 있었는데, 만일 애초 의도대로 물이 5센티미터쯤 고여 있었다면 정말 힘들긴 했을 거에요. 매번 테이크 때마다 옷을 갈아 입어야 되니까요. 게다가 신양씨는 얼굴이 피범벅이 된 상황인데, 그 혈액이 설탕물로 만든 것이거든요.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불 때마다 얼굴이 어땠겠어요. 그걸 어떻게 견뎠나 몰라요.(웃음)
박신양-그 이후로는 가급적 겨울에 찍는 영화는 안 합니다.(웃음)
(이 기사의 후반부는 6월16일자 ‘이동진의 영화풍경’에 이어집니다.)
[이동진닷컴] (글=이동진) (이 글은 6월15일자 <박신양-오승욱이 말하는 ‘킬리만자로’> 제하의 기사에 이어지는 후반부 내용입니다.)
이동진-박신양씨는 9년 전에 찍은 영화 ‘킬리만자로’를 생각하면 어떤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박신양-눈(雪) 속에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그리고 번개(안성기)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 거꾸로 앉아서 가는 장면의 느낌도 지금까지 참 좋게 남아 있어요. 감독님은 미대 출신이신데, ‘킬리만자로’를 만드시면서 머리 속에 어떤 화가의 그림을 떠올리셨는지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웃음)
오승욱-독일 화가인 막스 베크만의 작품을 떠올렸어요. 그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후반부에서 지옥도를 그려보고 싶었거든요.
이동진-감독님은 ‘킬리만자로’를 지금 다시 찍게 된다면 어떤 점이 이전과 가장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까.
오승욱-9년 전보다는 나이를 많이 먹었으니까 치기 어린 장면들이 줄어들 것 같아요. 그때는 괜히 어린 마음에 죄와 구원 같은 관념적 요소들에 매달렸는데 그런 것들을 많이 버릴 것 같네요. 다시 만든다면 ‘킬리만자로’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인 대한민국 남성들의 폭력성에 대해 좀더 집중해서 그리고 싶습니다. 샘 페킨파 감독이 미국 남성 폭력의 기원이 겁쟁이 콤플렉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처럼 저도 대한민국 남성들의 폭력의 기원을 고민해보고 싶어요.
오승욱 감독이 연출하고 박신양이 주연한 영화 '킬리만자로'.
이동진-9년 전 ‘킬리만자로’가 나왔을 때, 박신양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무척 인상적인 말씀을 하신 게 지금까지 기억납니다. 당시에 연이은 강렬한 연기들로 주목 받으실 때라서 사람들이 ‘변신’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질문했더니, “연기는 그 작품에 얼마나 적합한가로 평가되어야지, 전작들과 얼마나 다르냐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답하셨죠. 그 이후로도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하셨는데, 지금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진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박신양-지금 생각해도 맞는 말인 것 같은데요?(웃음) 예전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배우가 무슨 변신 로봇인 것은 아니잖아요. 물론 연기자는 때에 따라서 변신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될 거에요. 작품이 중심이 되고, 그 역할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가 중심이 되어야죠. 만일 촬영 감독이 자기의 기술을 뽐내는 방식으로만 찍으면 영화가 어떻게 되겠어요?
이동진-오승욱 감독님은 그동안 서울시네마테크 같은 곳에서 동서고금의 수작 영화들을 놓고 ‘관객과의 대화’를 무척 많이 하셨습니다. 저도 객석에서 감독님의 그런 모습을 참 많이 지켜봤죠. 특히 액션이나 누아르 영화들을 좋아하시는데, 지난 몇 년간 이 장르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신 작품들은 어떤 건가요.
오승욱-지난 몇 년간 하드 보일드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와 ‘이스턴 프라미스’였어요. 사실 요즘 저는 새로운 영화들은 잘 안 보고 1940~1950년대 영화들을 주로 봐서 놓친 작품들도 많을 거에요.
이동진-박신양씨는 지난 5년간 단 한 편의 영화(‘눈부신 날에’)에만 출연하셨습니다. 물론 배우가 꼭 영화에서만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렇지만 저는 박신양씨가 TV 브라운관에서뿐만 아니라 스크린에서도 좀더 자주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박신양씨는 배우로서 영화와 TV 드라마 중 어느 한쪽을 좀더 선호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신양-영화도 많이 하고 싶고 TV 드라마도 많이 하고 싶어요. 저는 스물아홉살 때까지 연극이 아닌 연기는 어디서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던 사람이에요. 저는 아직도 연기가 새로워요. 그래서인지 어느 한쪽을 더 선호하지 않습니다. 연기만 재미있게 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할 수 있어요. 저는 ‘연기 지상론자’입니다. 특정 매체에 대한 선입견이나 소속감 같은 게 별로 없어요. 물론 영화가 가진 특별한 매력이란 게 분명히 있긴 하죠. 기회가 된다면 좋은 영화들을 많이 하고 싶긴 해요. 하지만 한국에서 영화를 할 때, 표현의 한계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고 있어서 아쉽기도 해요.
이동진-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겠지만, 저 역시 오승욱 감독님의 신작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준비하시던 영화들이 계속 기획 단계에서 무산되어 아픔을 겪으셨는데, 현재 상황에서 차기작에 대한 계획을 어떻게 세우고 계신지가 무엇보다 궁금합니다.
오승욱-영화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타협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지금 1억원만 모여도 영화를 찍을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 역시 1억원의 제작비 규모에 맞게 써야 할 겁니다. 현재로선 신(scene)과 시퀀스가 일치하는 다섯 개 시퀀스의 영화, 혹은 세 개의 시퀀스로 이뤄진 깡패 영화 비슷한 걸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시나리오도 완벽하게 쓰기 위해서 지난 2년간 계속 준비하고 있어요. 가볍게 대하려고 합니다. 작은 영화를 하려고요. 일주일 안에 찍을 수 있는 영화 쪽으로 가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첫 작품만 내놓고 사라지는 감독이 되고 말 거라는 위기의식이 있습니다.
'킬리만자로' 상영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 /사진제공=한국영상자료원
이동진-이제 관객 분들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관객1-박신양씨는 영화에서 1인2역을 두 번 하셨습니다. ‘킬리만자로’와 ‘범죄의 재구성’이죠. 이 둘을 비교하면 어떤 작품에서 1인2역을 하는 게 더 힘드셨는지요.
박신양-‘킬리만자로’는 제게 1인2역 연기 연습을 충분히 시켜준 영화인 셈입니다. 저는 사실 ‘킬리만자로’를 찍고 나서 1인2역을 다시 또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그것도 똑 같은 영화사에서 말이죠. ‘범죄의 재구성’ 시나리오를 받게 됐는데, 그걸 읽어 보고 나니까 “할 때까지 해보자는 거야?” 싶더군요.(웃음) 사실 ‘킬리만자로’가 흥행적으로 큰 패배를 기록한 영화잖아요? 그런데 같은 배우에게 1인2역을 한 번 더 제의한다는 것은 웬만한 뚝심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고 느껴졌어요. ‘범죄의 재구성’의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이러다 틀리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곧 틀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어디 한 번 마구 몰아붙여보자는 마음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그 영화에서 처음부터 좀 과감하게 연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저로선 ‘킬리만자로’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던 영화였어요. 만일 ‘범죄의 재구성’이 먼저였다면, ‘킬리만자로’의 연기를 훨씬 더 잘했을 텐데 말이죠.(웃음)”
오승욱-그때도 (박)신양씨는 충분히 잘했어요.(웃음) 신양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떠오르는 기억이 있네요. 1인2역으로 형 해식과 동생 해철이 다투는 장면을 찍을 때, 제가 “입김으로 싸워달라”고 주문했어요. 말을 그렇게 하긴 했어도 속으론 반신반의했는데, 연기하는 것을 보니 진짜로 입김으로 싸우는 연기를 하더라고요. 물론 입김을 좀더 살리기 위해서 조명을 신경쓰긴 했지만 그게 자연스러워 보이기가 참 힘든 것이잖아요. 너무 과하게 입김을 내도 안 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지금 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연기를 해냈어요. ‘킬리만자로’는 신양씨가 하지 않았으면 만들어질 수가 없었을 거에요. 신양씨가 참여한다고 해서 그걸 조건으로 삼아 촬영에 들어간 작품이니까요.
관객2-이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보니 무척 감회가 새롭습니다. 특히 오늘은 바다가 나오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매우 폭력적이고 강렬한 영화지만 바다에서 인물들이 놀 때는 상당히 평화로워 보이거든요. 기타노 다케시 작품들 속에서의 바다 장면과도 비슷하게 보이는데, 혹시 거기서 영향을 받으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오승욱-기타노 다케시 영화들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들을 굉장히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합니다. ‘킬리만자로’를 만들 때 영화사의 경리 아가씨가 “왜 우리 회사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는 남자들이 무슨 일만 있으면 전부 바다로 가는 거에요?”라고 묻는 일도 있었죠. 그런데 기타노 다케시 영화뿐만이 아니라, 남자들이 떼로 나오는 영화를 보면 원래 다들 바다로 가요.(웃음) 이 영화를 찍으면서도 인물들이 바다로 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면 그 장면을 찍지 않았겠죠. 그런데 남자들이 꼭 바다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자들이 모이면 바다로 가고 싶어지잖아요.(웃음) 바다를 보게 되면 그냥 가슴이 뛰고요. 제게 아직도 소년 같은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건가요? 하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늙은 소년들 같기도 합니다.
관객3-오늘 ‘킬리만자로’를 보면서 해식과 해철 캐릭터 못지 않게, 어린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린애가 어머니에게 심한 욕을 퍼붓는 장면을 보면서 감독님이 참 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오승욱-그런데 그 부분은 제가 시나리오를 쓰거나 장소 헌팅을 하기 위해 지방을 다닐 때 직접 봤던 장면이었어요. 한 번도 아니고 비슷한 광경을 세 번씩이나 봤죠. 제가 독한 게 아니에요.(웃음) 부모가 폭력적이면 아이들도 결국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번개(안성기)가 남자들 사이에선 굉장히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집안에서는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장면을 통해 암시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역 배우에게 그런 연기를 시킬 때는 그게 굉장히 나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안성기 선배님께서 어린 시절에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에 아역으로 출연했던 기억이 무척 안 좋게 남아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킬리만자로’의 아역 배우를 직접 챙기셨죠. 저 역시 피가 나오는 장면을 찍을 때는 어린이 배우를 촬영장 밖에 나가 있게 했어요. 저를 “감독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감독 형님’이라고 부르라고도 했죠. 그래도 역할이 역할이니만큼 아주 좋은 기억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개봉 후 2년쯤 뒤에 그 아이가 좀더 컸을 때 다시 만난 적이 있었는데, 해맑게 웃으면서 제게 “감독 형님!”이라고 부르더군요. 그래서 속으로 “아, 내가 너한테 큰 죄를 짓지는 않았구나” 싶었죠.(웃음)
관객4-박신양씨는 한국에서 배우 생활을 하면서 특히 힘든 게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배우로서 바라는 게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요.
박신양-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게 힘들죠. 이런 이야기들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사실 배우가 연기할 때는 매일매일 하는 생각의 99%가 이런 것들인데 말이죠. 연기를 하고 작품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게 배우에겐 가장 본질적인 문제들인데 그런 것들엔 관심이 없으신가 봐요. 다들 가만히 놔두지를 않으세요.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자리가 그렇게 흔하지는 않아요. 그게 제일 힘든 점인 것 같습니다. 외부의 시선이 언제나 본론에서 벗어나 있는 거요. 그리고 배우로서 힘든 점을 하나 더 말한다면, 물리적인 조건이 너무 열악하다는 점입니다. 제가 촬영을 하다가 허리가 세 번 부러졌어요. 허리가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정도로 항상 과로하게 되죠. 우리처럼 배우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연기를 해야 하는 나라는 거의 없을 거에요. 좀더 인간적인 환경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연기가 싫어지게 되는 상황은 정말 못 견디겠어요. 이건 정말 제가 사랑하는 일이니까요.
이동진-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 드립니다.
오승욱-오늘 이곳까지 ‘킬리만자로’를 보러 와주신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제가 빨리 두번째 영화를 만들어서 여러분들과 그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게 제 간절한 바람입니다. 오늘 신양씨와 나란히 앉아 ‘킬리만자로’ 라스트 신을 보고 나서 서로 오랜만에 어깨를 부딪치며 이야기를 나눌 때 정말 뭉클했어요.
박신양-네, 마치 고등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었어요. 사실 오늘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킬리만자로’에서 노력했던 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오늘 이런 자리에 서고 보니 정말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드네요. 사실 너무나 애써서 만든 이 영화가 그냥 쉽게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 같아서 아쉬웠거든요. 그런데 혹시 알아요? 10년이 더 지나서 다시 ‘킬리만자로’를 회고하는 자리가 또 생길지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팬 서비스로 노래도 해야지.(웃음)
이동진-오늘 관객 분들은 기억력이 워낙 좋으시니 그 약속 지키셔야 할 것 같습니다.(웃음) 10년 뒤 박신양씨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자리를 기약하며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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