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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Hwang/interview

[인터뷰] <사생결단> 황정민 -영화는 관객의 평가에 의해 완성된다

매 작품마다 황정민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생결단> 이후 황정민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라는 언론의 평가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배우로서의 마인드가 확실했던 그는 누구에게나 삶의 운명을 결정짓는 어떤 사건이 찾아오길 마련이라고 했다. 최호 감독의 <사생결단>이 그런 사건이었다고 거침없이 말한 황정민을 지난 24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영화는 관객의 평가에 의해 완성된다


영화 <사생결단>은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매력적인 연기자였는지를 새삼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황정민은 <사생결단>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영화여야 하는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한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한국형 느와르의 청사진을 제시한 <사생결단>은 그의 연기 스펙트럼이 도대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다. 한 사람의 힘만 가지고는 절대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사생결단>을 촬영하면서 영화 한편을 완성할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를 감독, 스탭, 출연배우들과 나누었다. 


4개월 동안 부산에서 살았고, 자신의 촬영 분이 없는 날도 현장을 지켰다. 그만큼 황정민은 <사생결단>에 충실했다. 일찌감치 부산 사투리를 익히려 노력했고, ‘도경장’이란 인물을 탐구했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했던 “밥은 먹고 다니냐” 같은 명대사를 나름대로 인용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보다 느낌이 많이 약해졌을 거라고 말하지만 ‘도경장’은 그의 땀과 노력이 없었더라면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는 캐릭터였다. 배우 황정민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느낌은 절대 나올 수 없었을 거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시나리오에 표현된 ‘도경장’을 스크린 위에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영화는 관객의 평가에 의해 완성된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도경장'의 잔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이건 내가 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생결단>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황정민은 배우는 백마디 말보다 눈빛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연기자 중의 한 명이었다. 그래서 최호 감독에게 '선글라스'만은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캐릭터의 숨소리를 눈빛을 통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해 내고 싶은 욕심이 컸던 그에게 선글라스라는 ‘장애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연출한 <트래픽>을 보고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작품에서 베니치오 델 토로가 연기한 캐릭터(하비에르)를 보고 ‘저런 식으로도 연기가 가능하구나’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황정민은 어떤 역을 맡아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배우에게 어떤 경우든 불가능이란 없다. 황정민은 그 점을 매우 명백하게 알고 있는 배우이다. 진심을 다해 연기를 펼치는 황정민의 연기가 매 작품마다 빛날 수 밖에 없는 것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솟구치는 열정으로 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특정 이미지를 위해 영화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아요. 시간적 여유가 없는 '드라마'라는 매체의 경우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출연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배우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거든요.”


수갑을 채운 상도(류승범)에게 자신 좀 살려달라고 말할 때의 그의 깊고 불안하고 강하고 외로운 눈빛 속에 살아있는 황정민이 보였다. “저는 도경장의 삶을 보여주려고 카메라 앞에 선 것이지 배우 황정민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선 것은 아니에요. 연기는 연기이고 황정민은 황정민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그가 작품선택에 있어 ‘탁월한 선구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궁금해 한다. 그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그 중에서, 분명 재미있으면서 강렬한 힘을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이건 내가 할 작품’이라는 느낌이 드는 거죠.” 최호 감독이 2년 동안 부산 구석구석을 발로 뛰어 취재한 기록을 바탕으로 완성한 <사생결단>의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그는 역시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어떤 인물이든 없어서는 안 될 맛을 내는 배우 황정민의 연기욕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배우 황정민. 그 자신도 알다시피 황정민 연기의 핵심에는 ‘진심’이 있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그는 자신을 통제할 여지 조차 남겨두지 않는다. 완벽하게 그 인물이 되고 있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연기에 진심만 담는다면 나머지는 다 저절로 되는 것 같아요. 술을 마시지 않고도 술 취한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배우라면 그래야 되지 않을까요." 




◆ 저 연기 천재 아니에요


황정민은 어느새 굵직굵직한 작품들 속에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 그는 캐릭터의 이름을 각인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캐릭터의 이름은 잊어도 배우 황정민의 이름은 기억하게 됐다. 


스스로 많은 것을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하는 그의 현명한 연기고집이 계속되는 한, 그는 오래도록 사랑 받을 배우다. “스크린 속에서 배우의 연기가 빛나기 위해서는 우선 감독님이 잘 해야 돼요. 감독님의 주관이 뚜렷하게 있으니까 배우가 그런 식으로 살 수 있는 것이지 제가 뭐 천재인가요. 저 혼자 잘 한다고 해서 작품이 살아 나지는 않아요.(웃음)”


<사생결단>을 본 관객들은 모두 황정민의 연기에 흠뻑 취하게 될 것이다. 황정민에게는 오뚝이 같은 이미지가 있다. 그는 ‘최선의 연기’ 보다는 ‘최고의 연기’를 펼치기 원하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좌절과 희열을 즐길 줄 안다. “배우에게 있어서 얼굴은 중요하지 않아요. 배우는 연기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충무로 30대 중반의 남자배우 가운데 그는 몇 안 되는 주연급으로 확실히 자리를 굳히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찾기 보다 스스로 그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넘어야 할 벽을 만나요. 문제는 관객이 평가를 내려주기 전까지 그 벽을 넘었는지 못 넘었는지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건 그 벽을 뛰어넘으려고 촬영기간 내내 손톱이 빠질 정도로 노력했기 때문이에요.”


황정민이 연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착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였다. 평소에는 말수도 별로 없지만 그는 카메라 앞에만 서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카메라 앞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토해내면서 소름 돋는 카타르시스도 경험했던 그는 “연기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세를 가져다 준 게 영화라면, 연극은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이다.


◆ 배우라는 회전목마를 사랑한다




'배우'라는 회전목마를 탄 뒤 그는 ‘이 정도면 되겠지’ 라고 교만한 생각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출연작과 맡은 역할에서도 잘 나타나 듯이 황정민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서로 다른 캐릭터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는 일에 몰입할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연출, 제작은 제 몫이 아니기 때문에 연기에만 전념하고 싶어요. 그런데 단편영화는 한 편 찍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만약 배우가 안되었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그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목수가 되어있을 거라고 웃음 띤 얼굴로 말한다. 그 순간 망치질을 해가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가는 목수라는 직업이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배우 황정민과 꽤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평생을 배우라는 직업으로 멋지게 살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수많은 직업들이 있는 데 한 가지 일만 하다 가면 이 인생이 지겹지 느껴지지 않을까요. 배우와는 전혀 다른 직업을 가져서 또 다른 삶을 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웃음)”


황정민은 연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운명 같은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지금이 제2의 전성기가 아니냐는 질문에 황정민은 “그게 어디 저 혼자만의 힘 인가요. 현장에 있던 모두가 고생해서 얻은 결과죠”라며 겸손한 대답을 했다.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시간이 흐른 뒤 보면 어떤 느낌일까? “제가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그 캐릭터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편이거든요. 하나부터 열까지 깨 묻어도 안 아픈 작품이지만 나중에 보면 내가 출연한 영화 같지 않아요.(웃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배우, 그대 이름은 황정민


황정민은 ‘연기 변신’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변신’이라는 단어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맡은 역할에 가장 진실된 모습으로 접근하는 길을 고민한다. 


“송강호, 최민식, 안성기, 박중훈, 김승우 같은 선배님들이 돌다리를 잘 놓아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황정민은 설 자리가 없었을 거예요.” 선배님들이 만들어 놓은 돌다리 위에서 즐겁게 연기를 해서일까? 그는 후배들을 위해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또 하나의 돌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배우의 모습은 대부분 허상에 가깝다. 그러나 황정민은 배우가 허구의 모습을 연기하더라도 실제와 다름없는 진실함이 바탕을 이루지 않는다면 관객들에게 믿음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정상급 배우 대열에 들어설 만큼 성장했지만 아직도 그는 ‘스타’라는 말이 낯설다. 그러면서 관객이 부르면 언제든지 함께 할 수 있는 '연기자'로 남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충분한 준비와 노력에서 비롯된 자신감은 그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밥그릇만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 밥그릇이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만나 넘쳐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모자라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단 연기에 몰입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집중력이 강하다.영화를 보면 모두 그렇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황정민은 참 징그러운 배우인 동시에 매력적인 배우라고, 그리고 그가 있어서 <사생결단>을 보는 내내 행복했다고. 


그는 이번 영화에서 자신의 100퍼센트를 보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사생결단>은 도경장의 사생결단이자, 황정민의 사생결단이었던 것이다. 


글,사진: 김규한 기자


인터뷰 진행:김규한 기자,홍보희


동영상 촬영:판도라 TV 백순진 PD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5&aid=0000004958 <영상보러가기